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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고 싶은 이런저런이야기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우리는 왜 인문학에 새삼 주목하는가? 다름 아닌 ‘통찰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다. 여기서 말하는 통찰은 ‘통찰(洞察)’이면서 동시에 ‘통찰(通察)’이다. 통찰(洞察)‘은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꿰뚫어 보는 것을 말한다. 인사이트(insight)다. 아울러 통찰(通察)은 곧 통람(通覽)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훑어 두루 살펴보는 것이다. 오버뷰(overview)다. 결국 통찰의 힘은 바로 통찰과 통람의 융합이며 인사이트와 오버뷰의 시너지다. ---p.4

혼돈의 감옥에 갇히지 않고 불확실성의 벽을 넘어 분명한 비전의 새 길로 나아가려면 통찰의 힘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안주하지 않고 가로막힌 벽을 뚫으며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자 할 때 우리가 들어야 할 진정한 무기가 바로 통찰의 힘이다. 그리고 그것을 기르는 데 뿌리로부터 올라오는 자양분의 밑동이 바로 인문학이다. 그래서 인문학에 주목하는 것이다. 살기 위해서 그리고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해서!---p.5~6

이 책의 존재 이유는 오직 하나다. 인문학의 자양분을 섭취해 저마다의 삶의 밑동으로부터 통찰의 힘을 키우자는 것이다. 그것이 전부다. 그것을 키울 수만 있다면 이 책은 불쏘시개가 되어도 아깝지 않다. 더불어 이 책을 통해 감히 주창하는 슬로건은 ‘인문경영’이다. 인문학에 바탕한 인생경영으로부터 기업경영, 국가경영까지 삶의 모든 경영이다. ---p.6

결국 현실의 팽팽한 긴장감을 상실한 채 더 이상 결단할 필요도, 행동할 이유도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안주해버린 대학에서는 인문학이 위기일는지 모르지만, 날마다 살고 죽는 것이 종이 한 장 차이임을 절감하며 오늘도 절벽 낭떠러지 끝에서 새 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기업현실에서는 그 인문학이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고 있는 것이다. ---p.8

그렇다. 인문학은 살아 있다. 그것은 피가 흐르고 땀으로 젖어 있다. 삶의 끈끈하고 처절한 몸부림과 절규가 녹아난 것이 인문학의 진짜 모습이다. 내가 인문학 강의에서 전쟁을 다루고, 극한의 탐험과 모험을 다룬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살아 있는 인문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정한 인문학은 ‘훈고학’으로만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활성화된 ‘변화의 학’이며 지속하는 ‘삶의 고투’에서 응어리져 빚어진 빛나는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p.13

오늘날 중국 지도부가 벤치마킹하려는 인물은 진시황도, 한고조 유방도, 한무제도, 원태조 칭기즈칸도, 명태조 주원장도 아닌, 바로 강희제다. 강희제는 오늘날 중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황제다. 실제로 요즘 중국 최고위급 관리들 사이에서는 ‘강희제 배우기’가 한창이다. 장쩌민과 후진타오 주석은 틈만 나면 측근들에게 강희제에 대한 기록을 읽어보라고 권유한다. … 이제 시대는 변하고 있다. 그저 핏줄만 강조하는 것은 옛 이야기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적절히 섞이는 것이다. 또 그 섞임이 자극이 되어야 한다. 낯선 것을 만들어 기존의 것에 머물거나 안주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은 ‘오랑캐’ 덕분에 강대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랑캐는 끊임없이 한족을 자극하고 그로 인해 박차를 가하도록 만들었다. 마오쩌둥은 그 점을 정확하게 읽어냈으며, 강희-옹정-건륭 3대 133년이 중국의 미래를 보여준다고 감히 장담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p.19, 50

반면 근대로 들어서면서 오감의 불균형 시대가 열렸다. 한 마디로 시각 우위의 시대, 시각의 제국주의 시대로, 근대의 이성과 합리성이 매몰된 시각주의를 탄생시킨 것이다. 이 시대에는 ‘보는 것’이 곧 ‘아는 것’(I see=I know)이 되었고, ‘보이는 것’이 곧 ‘믿을 수 있는 것’(To see is to believe)이 되었다. 즉 이성과 합리주의가 근대를 시각의 시대, ‘보는 법(ways of seeing)의 시대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 그로 인해 비(非) 선형적이고 입체적인 사고는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오감의 융합, 감각의 통합에 근거한 입체적인 고대적 상상력이 최후를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p.103

힘 있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날것의 사고’를 할 필요가 있다. 레비스트로스는 자신의 저작 《야생의 사고》에서 ‘미개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사람들은 흔히 원주민들을 일컬어 미개인이라고 비하하여 말하지만 미개하다는 것은 선진과 후진이 가늠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지 부정적이고 나쁜 것은 아니다.” 미개함은 원시적인 것, 아직 재배되지 않고 익지 않은 날것의 사고, 야생의 패턴 그 자체다. 드림 소사이어티에서 이야기의 힘을 얻으려면 바로 그 야생의 사고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아무리 현대의 생활상을 하고 있다고 하나, 우리 안에는 분명히 수억 년을 이어온 야생의 유전자가 남아 있다. ---p.132~133

문명화 과정에서 나타난 매너의 본래 성격은 아이러니하게도 배려와는 거리가 멀다. 그 매너들은 상대를 위한 배려이기는커녕, 타인을 내 어떤 영역 안으로 들어설 수 없도록 만드는 구별의 장치, 즉 선 긋기 장치였다. 즉 매너 그 자체는 권력이었다. 문명화 과정 속에서 매너는 소수에게 독점되어 왔고, 그 매너가 보편화되면 오히려 그 가치를 상실했다. 구별과 차별을 가져오지 못하는 매너는 매너가 아니라고 여긴 탓이다. 매너에는 ‘배려’라는 통념 혹은 상식과 더불어 ‘구별 혹은 차별’이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음을 명확하게 인지할 필요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p.221

하루 중 가장 더운 시간이 12시 정오가 아닌 오후 2시인 것처럼 역사상 가장 뜨거운 시간인 최전성기는 이미 쇠망의 길목에 들어선 순간에 나타난다. 그래서 흥륭은 언제나 쇠망의 그늘을 안고 있다. 《로마제국쇠망사》의 도입부가 로마 제국 최고의 전성기라는 사실은 그래서 더 의미심장하다. ---p.310

 

 

비즈니스 현장은 ‘전쟁’이란 말로 표현 가능할 만큼 치열하다. 또한 날로 그 강도는 더 세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각 기업의 경영자들은 이제 경제경영서를 넘어 인문서에서 새로운 통찰을 구하고 있다. 즉, ‘인문경영(人文經營)’인 셈이다. 최근 불어닥친 ‘독서경영’을 넘어서, 인문경영은 깊이를 추구해야 진정한 차별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즉 문·사·철(文·史·哲)로 표현되는 인문학적 깊이가 ‘건널 수 없는 차이와 통찰’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는 비즈니스계의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CEO들은 경쟁과 관련된 주제보다 사고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 즉 철학이나 역사, 시 관련 서적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최근 ‘뉴욕타임스’의 기사가 바로 이런 흐름을 짚고 있다.

“사람경영, 자아경영, 기업경영, 국가경영 등 그 어떤 분야의 경영에서든 오늘날 가장 시급하고 긴요한 것은 통찰의 힘이다. 그런데 그 통찰의 힘을 기르는 데 최고의 자양분이 바로 인문학(人文學), 즉 ‘후마니타스(humanitas)’다. 그래서 인문학을 다시 보는 것이다. 인문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인문의 위력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진정한 통찰의 힘을 얻기 위해서” ---저자의 서문 중에서

지난 2005년 8월부터 삼성경제연구소 SERICEO에서 CEO를 위한 인문학 조찬특강 ‘메디치21’의 리딩멘토로 활약하고 있는 정진홍 박사(커뮤니케이션학)는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정진홍의 인문경영’(21세기북스)이란 제목으로 내년 상반기까지 세권의 책으로 "인문경영"을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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