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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기획 그리고 마케팅

소비시장의 무법자 ‘블랙컨슈머’

사진:이수길 기자
블랙컨슈머는 기업은 물론 선의의 소비자에게까지 피해를 주고 있다. 소비자의 의식 수준을 높이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중소기업 57.5% 월 1회 이상 악성 클레임 … 무리한 요구로 기업경영 악화

블랙컨슈머(Black Consumer)가 건전한 소비시장과 기업경영에 악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마땅한 제재 방법이 없어 기업들의 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블랙컨슈머는 기업에 대해 상식 밖의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직업적으로 불만제기를 하는 소비자를 일컫는 말. 이들의 악성 클레임으로 곤란을 겪는 기업들은 매년 큰 폭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중소기업 10곳 중 6곳은 월 1회 이상 악성 민원이나 클레임 경험으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과도한 손해배상 요구와 인터넷 유포, 고발 등을 통한 무리한 보상요구는 물론 90% 이상 사용한 제품에 대해 환불 요구까지 천태만상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소비재를 생산하는 중소기업 120개사를 대상으로 한 ‘소비자 문제가 기업경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중소기업의 57.5%는 월 1회 이상 악성 민원 또는 클레임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르면 ‘월 1~2회’가 45.8%로 가장 많았고 ‘월 3~5회’가 10.0%, ‘월 10회 이상’도 1.7%나 차지했다.

중소기업의 한 관계자는 “요즘 소비자들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기업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며 “이러한 무리한 요구가 일상화되고 있어 기업경영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또 “제품가격의 몇 배나 되는 과도한 금액의 손해배상 요구와 사진 및 동영상의 인터넷 유포 위협, 소비자단체 고발 등의 협박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무리한 요구에 속 앓는 기업

“두루마리 화장지의 길이를 자로 재 정량보다 1cm라도 짧으면 업체를 고발하겠다.” 지난해 개봉한 백윤식, 봉태규 주연의 코미디 영화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의 한 장면 중 백윤식 씨의 대사다. 제품의 정량과 규격에 대해 소비자가 이러한 요구는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백 씨의 이러한 행동은 전형적인 블랙컨슈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블랙컨슈머의 행동은 누가 봐도 비상식적이다.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며 제품에 대한 무리한 환불 및 보상을 요구한다. 또 전화 또는 인터넷을 통한 위협을 일삼으며 손해배상까지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횡포에도 기업들은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대한민국 소비시장의 현 주소다.

A백화점 전자제품 매장. 한 고객이 이미 생산되지 않는 단종 제품을 가지고 매장을 찾아와 환불해 달라고 항의한다. 최근 구입한 제품인데 불량품이라는 것이 이유다. 매장 직원이 환불이 안 되는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을 해도 고객의 항의는 더 거칠어질 뿐이다.

B분유회사. 한 고객이 시중에서 구입한 분유에서 벌레가 나왔다고 항의한다. 사진과 동영상을 증거로 제시하며 제품 가격의 몇 배나 되는 무리한 보상을 요구한다. 회사 관계자가 전자동 최첨단 시설에서 만든 분유에 벌레와 같은 이물질이 나오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설명을 해도 막무가내다. 심지어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인터넷에 유포하겠다고 위협한다.

C대형할인점 의류매장. 몇 달 전 옷을 구입했던 한 고객이 매장을 찾아와 옷이 불량품이라며 환불해 달라고 항의한다. 옷은 전혀 이상이 없는 제품이었지만 고객은 입을수록 탈색이 된다는 주장을 되풀이한다. 옷 관리를 소홀히 한 소비자의 과실이라는 것이 불 보듯 뻔했지만 고객은 시종일관 처음부터 불량제품을 판매했다며 매장 직원에게 고성을 지른다. 주위의 고객들은 시끄러운 소리에 깜짝 놀라 모두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ECONOMY21 표
이러한 상황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대부분의 업계 관계자들은 고객 클레임이 억지인줄을 알지만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조용히 처리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말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막무가내로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며 억지를 써도 일단 시끄러워지면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미지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며 “악성 클레임이 늘어나고 있지만 이를 제재할 뾰족한 수가 없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악성 소비자의 요구를 들어준다”고 말했다.

소비자 의식 높이는 노력 필요

최근 소비시장의 건전한 육성과 소비자 스스로의 자성 노력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소비자는 더 이상 보호대상이 아니라 권리행사의 주체이기 때문에 보호보다는 스스로의 선택에 대해 자율적으로 책임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명희 신임 한국소비자원 원장이 지난해 10월 기자간담회를 통해 소비자와 기업간 조정자 역할을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대목이다.

박 원장은 “소비자 보호의 중요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지만 기업을 대상으로 소비자의 요구를 다 채우는 건 부담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소비자가 자주적인 의사결정의 주체로서 합리적인 의식과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소비자 교육과 정보제공 기능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건전한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주고 소비자의 권리를 남용하는 블랙컨슈머를 근절시키려는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블랙컨슈머로 인한 악성 클레임은 기업의 불필요한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또 이들의 억지 요구를 상대하기 위한 인력투입과 시간소비 등도 곧 비용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비용은 소비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블랙컨슈머 문제는 결국 소비자는 물론 기업들에게 모두 피해를 주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더욱이 집단분쟁조정제도와 소비자단체소송제도와 같이 현재 시행되고 있거나 내년부터 시행될 새로운 소비자보호제도가 블랙컨슈머들로 인해 악용될 경우 기업들의 경영에 대한 부담과 손실은 더 클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소송남발 우려와 패소시 손해배상, 생산중단 등 기업의 물적 비용과 경영 부담이 크고 기업 이미지 실추와 같은 무형의 피해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특히 부족한 인력 및 자금 등으로 기업경영에 애로사항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의 피해는 더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블랙컨슈머는 건전한 소비자 활동과 건강한 기업경영을 저해하는 사람들이다. 이들로 인한 폐해를 막고 소비자와 기업간 건강한 관계가 형성되려면 정부와 기업, 그리고 소비자 모두의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유옥현 중소기업중앙회 소기업유통서비스팀 팀장은 “블랙컨슈머로 인한 피해는 기업뿐 아니라 선의의 소비자에게도 전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합리적인 소비자주권을 행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부의 소비자 정책이 기업과 소비자의 권익이 동시에 보호될 수 있도록 균형적인 시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대섭 기자 joas11@economy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