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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시절, 그때.. 그리고 양키캔들까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절, 추억의 반추, 그리고 양키캔들까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추억할 이야기들이 많아 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끔 문득문득 뜨거운 8월의 강렬한 태양의 위엄이 가득한 큰길가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바라본 하늘, 늦은 밤 야근 중 잠깐 내다본 창밖 거리 야경, 우두커니 책상에 앉아 책을 보다가도 어린시절의 추억은 그렇게 게릴라처럼 떠오릅니다.

제가 떠오르는 추억들은 사실 사물들과 연관된 많은 것들과 거미줄처럼 얽혀있습니다. 마치 지금의 네트워크처럼 말입니다.

새소년’, ‘소년중앙’, ‘어깨동무 

 


 

 

잡지도 잡지지만 거기에 딸린 부록들은 늘 어린시절 장래희망으로 꿈꾸어왔던 과학자의 꿈을 키우는데 작은 도움을 주었고, 당시에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신기한 과학도구며 장난감들은 그냥 장난감이 아닌 미래 과학자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며 자못 진지하게 만들었던 추억은 지금 생각해도 즐거웠던 시간이였습니다.

후에 등장한 보물섬이라는 만화잡지 역시 기억의 한조각을 나누고 있는 작은 케익 같은 것이였습니다.

 

단행본으로도 나오고, 만화잡지에도 실렸던 기억으로 떠오르는 로봇찌빠’, ‘주먹대장’, ‘쭉쟁이등은 읽어도 읽어도 새롭고 재미있었던, 그래서 딱치치기, 구슬치기, 다방구보다 더 재미있고 유익했던 친구들과 어울려서 지내는 시간과 달리 오롯하게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였습니다. 그때는 세상이 멈추고 그 세상은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그 시간이듯말입니다 

 


 

, 어느해인가 80년대초쯤일걸로 기억납니다. 크리스마스이브날 아버지는 큰 Tv를 그것도 칼라로 나오는 Tv를 선물로 사가지고 오십니다. 나만의 세상은 다시 한번 요동치며 크게 뒤바뀌게 됩니다.

이상한 나라의 폴은 늘 끝날 때 안타까움을 가져다주고, ‘은하철도999’는 일요일아침의 늦잠으로부터 해방시켜줍니다. ‘이겨라승리호’, ‘캐산’, ‘짱가그리고 그렌다이져’, ‘마징가제트까지.. 모두 그 요상한 마법의 상자 Tv가 들오면서부터 새롭게 내안에 자리잡게 되는 주인공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더, 내 어린시절 재미이자 하나의 충격은 등화관제라는 행사입니다. 아마 어렴풋한 기억은 북한군의 침략에 대비한 민간의 군사대비 차원이였던 것으로 생각이 들지만 아마 권력층의 통제수단으로 사용된 야비한 방법이였을거라고 지금사 판단됩니다만, 여하간..

하여 이런 날이 되면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어서 좋았고, 또 하나 초를 켤 수 있다는 생각에 더욱 즐거웠던 기억이 납니다.  

 

 

 

!

그냥 흰색의 어른손가락 2개보다 얇았던 그 초

서양에서 왔다고 해서 양초라고 불렸던 그 초는, 참 어린 시절 나에게 새로운 또 다른 세상을 가져다준 계기였습니다. 불장난하면 오줌싼다는 어른들의 훈계도 그날이 되면 그나마 켤 수 있는 그 초. 등화관제라는 행사는 하나의 이벤트였습니다. 하염없이 초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시간은 거꾸로 흘러갔고, 촛불안에는 또다른 초가 그리고 그안에는 내가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얼마전 책을 읽다가 문득 찾아낸 구절

불꽃의 관조는 하나의 근원적인 몽상을 영속화시킨다. 그것은 우리를 세계로부터 떼어놓으며 몽상가의 세계를 확장시킨다. 불꽃은 그 자체만으로도 위대한 現前이지만, 그것의 옆에 있으면 우리는 멀리, 너무도 멀리 꿈꾸게 된다. ‘우리는 몽상속에서 길을 잃는다.’ 불꽃은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투쟁하면서 작고 연약한 모습으로 거기있다. 그래서 몽상가는 자신의 존재를 상실하고 크게, 너무도 크게 꿈꾸면서-세계에 대해 꿈꾸면서-다른 곳으로 꿈꾸러 간다. - 가스통 바슐라르, <<촛불의 미학>> 

 

 

이글은 다시 등화관제의 시절의 나, 그 시절 하염없이 바라보던 어린시절의 내를 다시 꺼내오는, 그래서 이제 그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사물들이 와르르르, 내 보물상자 내 장난감 보물상자에서 추억의 구슬과 딱지가 쏟아져 나오는것처럼 말입니다.

그 시절 꼬마몽상가이자 꼬마철학자의 나는 이제 어디로 갔는지... 작고 연약했던 촛불과 같았던 그 존재말입니다.

   

 

 

 

 

그리고 수년이 흘러 그 초는 이제 향초로 변신합니다.

! 향이 나는 초라니....

향초!

얼마나 철학적인 단어인지, 그냥 불만을 밝히는 초가 아니라 좋은 냄새, 엄마 냄새가 나는 초라니... 문득 처음 향초라는 단어-사물을 접하고 느낀 점은 이미 40이 넘어버린 내게는 충격과도 같은 것이였습니다.

누군가는 돈을 태우는 초라는 비낭만적인 소리는 차치하고라도

향초라는 그 단어는 이미 다시 새로운 내안의 몽상가, 그 꼬마 몽상가를 소환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향초는 양키캔들! 

 

 

양키캔들! 향초, 양키캔들.....

 

 

! 양키캔들이라니.....  

눈으로 보고 다시눈을 감고 느끼고, 머릿속의 상상력의 빗장을 풀어헤치고, 가슴의 막힌 대문을 다시 열고, 꿈꾸는 그 몽상가는 이제 더 이상 초를 바라볼 필요는 없어졌습니다.

그냥 눈을 감고 상상만하면 되는겁니다.

 

 

  

이제 그때의 꼬마몽상가로 꼬마철학자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무언가해야할 것은 없는것이지요. 그냥 머리와 가슴을 열고 느끼면 되는 것입니다.

양키캔들과 함께 말입니다.  

 

 

새로운 미학... 그리고 양키캔들.. 

 

나이가 들어간다는건 그만큼 추억의 무게와 함께 눈물도 많아진다는것!